<깊고 어두운 강가에서>  

  이제 다시 어두운 강가에 서서

  밀항하듯 탈영하듯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다.

  수없이 건너 왔던 강을 또 혼자 건너야 한다.


  수심을 알 수 없는 저 어두운 강에 몸을 던져야

  이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이제 저 강은 나를 건네줄 수도 있고

  내 생명을 앗아 갈 수도 있다.


  이슬픔과 두려움에 아랑곳없이

  나는 다만 깊고 어두운 천성의 강에

  던져지는 자맥질일 뿐이다.    

                                                    -지율합장-
                                  

                                                   < 부치지 못한 편지 중에서 >


오늘 저는 천성의 긴 간천 계곡을 걸어 내려오면서 저를 부른 것은 천성 그 자체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눈이 보고 있는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저는 저의 전 존재를 걸고도 늘 마음은 무너졌지만 이 일은 다만 한 마리의 도롱뇽, 한 비구니의 목숨을 건 사투가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이 산하와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생명의 역사와 생명의 문화가 사라진 땅에서 아이들이 꾸는 꿈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죄악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어머니- 지구,  어머니 -산, 생태계의 자궁- 늪,  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과학이라고, 발전이라고 부르는 지식과 문화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무감합니다.


저는 정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지만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의 불은 그 원리를 들여다보고 정치는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는 일이라고,

이러한 이야기는 매우 고무적이겠지만 저는 문득 생각합니다.


철의 장막이라고 했던 소련의 문을 열었던 고르비는 이야기했습니다.

- 자연은 나의 신이며 나무는 나의 성전이며 숲은 나의 대성당이라고,  

그는 이어 “나의 사랑은 자연의 신비에서 비롯되어졌다”고,

그의 그런 사상은 그를 소련의 대통령이 아닌 전 세계의 대통령이 되게 하였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안자열전에서 사마천이 만일 안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지게를 지고 수례를 끌어도

좋다고 하던 말을 생각했습니다.


지난날 정부와 고속철도 공단은 제게 천성산 문제에 대하여 5번에 걸쳐 공식적인 자리에서 약속을

했으며 저는 그 약속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여 본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 약속들은 사석에서 했던 사적 발언과 행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곤궁은 더 심해졌으며 제가 겪은 아픔과 슬픔의 칼날은 저를 떠나 지금 천성산으로 향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한비구니로서가 아니라 천성산과 천성산의 뭇생명을 대신하여 거리에 섰었기에

님들이 했던 그 약속은 바로 천성산의  뭇 생명들에게 했던 약속이었습니다.


천성산의 가치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줄 곳 주장했던 환경영향평가는 한 비구니가 목숨을

걸고 4년 동안 거리에 서서 호소하고 염원하고 발원했던 일이며 수많은 종교인이 거리에 서고 41만

도롱뇽 친구들이 함께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백일 단식이후, 몇달을 지나오면서  저는 이 사회가 움직이는 보다 큰 동력을 보았으며

줄 곳 ‘어떤 운명“ 앞에 서있는 저와 천성산을 보았습니다.



저와 천성산은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정치와 거대한 자본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톱니바퀴의

축에 끼어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권력과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그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진실은 없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제 몸에는 그들이 지나간 수없이 많은 바퀴자국이 있으며 상처는 오히려 제 안쪽에서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얼듯 보기에 우여곡절을 겪고 공동조사가 시작되었지만 ........

저는 그 현장에도 갈 수 없었고 그들은 저를 천성산 바깥쪽으로 밀어 내는데 성공한 듯합니다.


3개월 만이라도 공사를 중지하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은 채 천성산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방금 전 저는 안적암 가는 길이라는 영상물을 만들었고 이 영상물을 만들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작은 암자에서 우리는 생명의 대안이란 없다고 하는 전국모임을 가졌으며 그 자리에 김종철교수님

과 박병상 박사님, “비단으로 짠 천성산”이라는 아름다운 글을 독일 인지학회에 올려주셨던 리타테일러

교수님과. 부산지역에 계신 많은 분들이 함께하셨습니다.


이 영상물에는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아픔과 천성산이 겪고 있는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지금 저의 건강은 악화되어 있고 청와대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저는 폭풍우치는 바닷가에 서있는

곧 무너져 버릴 판자집이 틀림없지만 아름다움과 생기를 잃어가는 천성산의 아픔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먼 길을 돌아 왔지만 저는 그 마지막 믿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픈 우리의 산하를 위해 진실의 법정에서 천성산 문제를 바라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국운은 창성하고 만물은 영원하소서...........                                         -  지율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