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4천배 이어가기를 시작하며...

                                                                                                    - 글, 사진 이은정 사무국장

산과 바람이 빚어내는 낮고 고요한 노래를 들으며 꽃처럼 피어나던 봄의 잎싹들.
여린 잎은 빗방울의 리듬에 맞추어 잎맥에 힘을 키운다.
시나브로 앞산의 나무들은 신록을 준비하고 있다.
꽃이 피었다 지고 계곡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로운 생명들이 부산해질 무렵 새들의 날개짓도 한껏 바빠진다.
앞산은 누대로 그래왔듯이 저 홀로 계절을 준비하며 사람의 도시를 내려다본다.

어머니 산, 앞산.
앞산은 이름처럼 늘 우리 눈앞에 있었고 달구벌의 사람들은 앞산의 생명력을 받아먹으며 살아왔다.
빽빽한 도시는 앞산자락을 뜯어내어 외연을 키우고 자동차길을 만들어 앞산에 어지러운 생채기를 남겼지만 앞산은 말없이 도시를 껴안았다.
이렇게 가까이, 이렇게 풍성하게 도시를 감싸고 있는 앞산을 가진 것은 우리들만의 자랑이다.

먹고 살기 어려우니 앞산에 다시 도로를 내자고 한다.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데 찻길을 내는건 당연한 게 아니냐.”는 게 대부분의 정서다.
어떤 이는 “터널이 오히려 친환경적 공법 아닌가.”고 되묻기도 한다.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앞산에 큰 도로를 내면 죽은 대구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앞산에 큰 도로를 내면 막힌 도로가 뻥 뚫릴 수 있을까?
터널을 뚫는 것이 안 뚫는 것보다 환경을 더 보존하는 방법일까?

가장 한심한 것은 이 사업을 추진하는 대구시가 1987년 자료를 가지고 사업을 밀어붙이는 데에 있다.
20년 전에 세워둔 도시계획이 오늘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얼마나 자신할 수 있는가? 20년 전의 인구예측이나 교통수요예측이 맞지 않다는 것은 통계청이 내놓은 간단한 자료를 보고도 알 수 있다.
사업 목적의 골간이 되는 도시계획의 근거자료부터 잘못된 시점에서, 향방을 잃은 사업을 “무조건 하고 보자”식으로 밀어붙이는 안일함과 독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개발하면서 ‘문명’을 만들어왔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자연을 약탈하면 돈이 나왔다.
다 망해도 안 망하는 것이 자연을 파헤치는 건설사업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다.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은 남겨둬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파헤치고 약탈한 것도 모자라 도시의 허파 구실을 충실히 해왔던 앞산을 또 이리저리 헤집어 놓으면 이제 도시 전체가 어떻게 숨쉬고 살려고 하는지.

앞산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파괴된 자연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오만함일 뿐.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대구시의 얘기를 듣고 지난 한 해 동안 무수히 많은 제안을 했고 한껏 목소리를 높여 이건 아니라고 떠들어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집 일 아니네.” “자동차 타고 다니려면 도로 뻥뻥 뚫어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먹여 살려 온 앞산과 모든 자연의 이름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려 한다.
“앞산터널반대 대구시민 25만4천배 이어가기” 운동이 그것이다.
되돌이킬 수 없는 미래를 바로 잡는 시점이 바로 오늘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산과 사람의 공명이 미안함조차 모르는 뻔뻔한 이들의 마음에도 부디 전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