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환경운동연합 이은정 회원이 직접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를 (평화뉴스.www.pn.or.kr) 올립니다.

모두 함께 기쁨을 나누었으며 합니다.

 

 

20년 싸움, 흐트러짐 없이 서있는 주민들

경북 고령 덕곡면대책위 해단..."가야산 골프장, 완전히 끝났다. 끝났다"
2011년 08월 22일 (월) 10:43:31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 pnnews@pn.or.kr


비가 내리는 8월 20일, 고령군 덕곡면 딸기공판장 너른 마당에서는 주민들의 이색적인 잔치가 벌어졌다. 잔치의 제목은 ‘가야산국립공원 골프장조성반대 덕곡면대책위원회 해단식’. 잔칫상엔 돼지고기와 막걸리가 필수. 아침부터 청년회원들은 돼지수육을 썰기 바쁘고 부녀회원들은 국밥을 나르느라 부산했지만, 250여명의 덕곡 주민들이 모인 잔치는 질서정연하고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 <가야산국립공원 골프장조성반대 덕곡면대책위원회 해단식>(2011.8.20 덕곡면 딸기공판장 너른마당)...25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완전히 끝났다! 끝났다!"며 잔치를 벌였다 / 사진.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

사실 이런 잔치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원래 이 사업은 1991년 주)가야개발이 가야산국립공원 내 골프장 조성 허가를 받기 시작하면서 10여년의 싸움 끝에 2003년 대법원의 불허판결로 이미 결론이 난 사업이었다. 때문에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받아든 온 마 을 사람들이 주민대책위원회의 해단식을 원대히 치루었었다.

그랬던 것이 다시 슬슬 고개를 내밀다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골프장사업이 재추진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대법원 판결과는 무관하게 행정적 ‘고시’란 것은 여전히 살아있었던 것이다. 행정고시 폐지를 위해 주민대책위원회 또한 다시 결성되었고 밀고 당기는 반대운동 끝에 2011년 7월21일 환경부의 고시폐지로 골프장사업은 완전히 종결짓게 되었다. 1991년 이후 지루한 싸움 끝에 얻어진 쾌거였다.

20년.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는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전 국민 백만인 서명을 달성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도영환 주민대책위원장을 병으로 먼저 보내야 하는 일도 있었다.

   
▲ 김창기 주민대책위원장
 "흐트러짐 없이 서있는 주민들...진짜 감동이었지요"

김창기 위원장은 20년 전 주민집회에서 무대 청소하고 교통을 서던 청년이었다. 어느덧 중년이 된 그는 위원장이 되어 주민 상경 집회도 여러 번 지휘했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앞에서 1인 시위를 서다가, 사업주가 낸 허가 신청서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도장을 찍느냐 마느냐 하는 긴장된 순간에는 하루 종일 지나가는 직원들을 붙들고 이리저리 하소연하면서 절망하기도 했다.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사업주의 협박과 찬성파들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를 ‘반대운동 종결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주민들이었다.

“진짜 그 날 일을 잊을 수 없지요. 올해 2월에 서울 데모하러 갔을 때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우~ 몰려가서 집회를 하다가 우리 집행부는 환경부에 우리의 내용을 전달하고 항의하기 위해 11층 회의실로 올라갔거든요. 옥신각신 하다보이 두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딱! 내려오니까 주민들이 처음 오열 세워둔 고대로 하나 흐트러짐 없이 서있는 기라요. 그날이 한파 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거든요. 얼매나 춥고 다들 나이 드신 분들인데 그래 서있대요. 놀랬어요. 진짜 감동이었지요. 종로경찰서에서도 우리보고 고맙다 하대요. 막 때려 부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질서 있게 하니까 그러더라고요.”

   
▲ 지성희 활동팀장
2차 반대운동을 함께 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성희 활동팀장도 비슷한 추억을 떠올린다. 지 팀장은 먼 길을 오가며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팔만대장경 이운로 순례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작년 11월이죠. 주민집회에 참석하려고 갔는데 운동장에 들어서는 순간, 할머니들이 머리에 똑같이 빨간 띠를 매고 줄 쫙~ 맞춰서 서있는 거에요. 완전 준비된 할머니들 같았어요. 왠지 웃음도 나고 찡했어요.”

 "뭘 이룬다는 게 너무 힘든 세상...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 공정옥 사무처장
「대구환경운동연합」공정옥 사무처장은 가야산골프장반대운동으로 시민운동 딱지를 뗀 사람이다. 당시 ‘공간사’였던 공처장은 눈물이 많아서 해단식 축사를 하면서도 목이 메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난 일이 다시 재개된다했을 때는 정말 그렇게 억울하고 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법의 허점을 노릴 수 있을까, 자본의 집요함이란 게 이런 거였나’하면서 한동안 사태를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어요. 지나간 싸움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도 많이 나고... 앞선 분들의 노고야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뭘 이룬다는 게 너무 힘든 세상이라 이런 마을 잔치에 참석하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영광인지 모르겠어요.”

배철헌 주민대책위원회 총무는 냉정하고 분명한 실무형이라 뜻하지 않게 ‘뺀질이’란 별명까지 얻었지만 누구보다 마음고생도 많았고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해왔다.

"협박하고 쑤시고, 안될끼다...20년 세월의 저력으로"

   
▲ 배철헌 주민대책위 총무
“재조성이란 건 말도 안되는 일이잖아요. 고시도 우리가 직접 국립공단 찾아가서 실랑이 벌여서야 눈으로 확인했죠. 대법원 판례 찾고 고시 찾기 전까지 얼마나 피 토했습니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돈이라면 누구나 눈 번쩍 뜨는 세상에서 환경보존 한다하면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거든요. 막판에 업주가 자꾸 협박하고 쑤시고, 몇몇 어른들이 ‘너거가 백날 싸워봐라. 안될끼다.’ 칼 때는 오기도 생기지만 지치기도 하거든요. 그러다가 지역 대책회의 하면 용기도 나고 힘도 나죠. 근데 수고했다, 고맙단 말 들으면 사실 부끄럽습니다. 이게 다 선대에서 닦아 놓은 거거든요. 골프장 땜에 시달리다보니까 그런지 모르겠지만, 덕곡은 비교적 진보적입니다. 선거 때도 몰표 없고 반반씩 나오거든요. 좀 특이하죠. 아마 그런게 저력이란 게 아닐까 싶어요. 세월이 20년인데, 저력이 참 무서운 거죠.”

주민들의 마지막 구호..."완전히 끝났다! 끝났다!"

지금도 멀쩡한 산야를 깨부수며 ‘골프대중화’를 방패삼아 여기저기 골프장이 앞 다투어 들어서고 있다. 보통은 골프장이 들어서기도 전에 지역 공동체는 ‘보상’을 무기로 갈라지기 일쑤다. 더욱이 노인들만 남은 농촌에서 사업주의 물질·여론공세를 뚫고 골프장반대운동을 꾸준히 해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날 해단식을 마치면서 주민들이 입을 모아 외쳤던 마지막 구호, “완전히 끝났다! 끝났다!”란 합창은 더욱 소중한 것이다.

   
▲ 지역대책위원들...이들은 단합된 주민의 힘을 보여주었다 / 사진.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

싸움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성장시켰다. 골프장반대운동의 핵심인물들은 모두 지역을 이끌고 나갈 믿음직한 지도자로 부상했다. 싸움 속에서 이들은 합리적인 갈등해결, 다른 지역과 연대하는 성숙함을 키웠고 지역공동체는 더욱 굳건해졌다.

이제 이들은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둘레길, 올레길이 요즘 유행이잖아요. 이런 일들은 지역 환경을 보존하면서도 소득창출까지 하는 사업이라고 봐요. 환경단체들이 ‘팔만대장경 이운로’를 계속 완성해나갈 의지가 있다 하니까 저희도 그런 방향으로 지역발전을 고민해 봐야겠지요. 아이고~ 보존운동 이게 할 일이 더 많아요.”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길, 지역을 진정으로 가꾸어 가는 길이 과연 무엇일까. 그들의 ‘행복한 고민’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 덕곡면 청년회 회원들이 '해단식' 잔치 준비에 바쁘다 / 사진.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

   
▲ 점심을 준비하는 부녀회원들... / 사진.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

   
▲ 김창기 주민대책위원장에게 공로패를 받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성희 활동팀장과 「대구환경운동연합」공정옥 사무처장 / 사진. 평화뉴스 이은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