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민중의 자존을 지킨 나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두런두런 인문학 <베트남 자전거 여행>은 기대 없이 참석했다. 아시아 역사가 중국, 일본, 한국을 비롯한 삼국 중심으로 기술되는 경향이 짙어서 우리의 입장에선 변방에 불과한 베트남이야기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여겼다. 우리 안에도 제국주의자처럼 우리와 다른 변방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저변에 흐르는 무의식은 피부색을 기준으로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나곤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의 재미는 구체적이고 좌중이 알 만한 사람 이야기가 맛깔 난다. 시작 삼십 분전에 도착한 참석자들께 사무실 옥상에서 기른 상추와 깻잎, 부추를 비롯하여 볶은 호박과 당근, 볶음 고추장을 얹은 야채 비빔밥을 대접했다. 일찍 도착하신 천주교 정평위 회원 부부와 강연자 송필경 의장님은 비빔밥을 드시면서 서울시 종로구 효자동 블루하우스에 얽힌 뒤담화를 맛있게 나누셨다. 간헐적으로 부엌으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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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은 송필경 의장님이 올 봄에 다녀오신 베트남 여행 사진을 보면서 진행되었다. 강연자께서는 형님의 베트남 전쟁 후일담을 우연히 듣고,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른 충격에 베트남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번 여행 일정은 베트남 역사에서 3대 저항 전쟁으로 꼽히는 반프랑스 전쟁의 최대 격전지 디엔비엔푸의 장정을 되짚는 여정이었다. 무기가 발달한 프랑스에 비하면 맨몸으로 싸우는 것과 다름없던 재래식 무기,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후방 지원의 과정은 맨발과 손을 뒤로 움직여 조정하는 불편한 자전거로 이뤄졌다.

 

흑백 필름의 과거 사진과 칼라의 현재 사진을 비교하는 강연은 단순히 지난 시간으로서 과거와 진행형의 현재를 비교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의 역사라는 우회로로 우리의 지금을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베트남 독립전쟁을 이끈 호 아저씨 호치민이란 지도자는 변화의 철학 맑시즘을 현지화하고, 승리를 위한 전략, 높은 도덕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여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을 만이 아니라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는 일화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보는 듯 했다. 지도자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 권력의 정점에 오른 이후 변함없는 모습은 그의 천품과 부단한 성찰로 이뤄졌을 것이다. ‘호치민과 같은 지도자에 대한 선망이 자칫 영웅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강연자는 호치민은 결국 베트남 역사의 산물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베트남 역사에서 첫 번째 저항 전쟁으로 기록하는 대몽고전 같은 역사 경험이 선진 문명을 앞세운 외세에 쉽지 굴복하지 않는 끈질긴 항거를 낳았다고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베트남 전 때 해방군이 미국 대사관을 진격하던 모습이 세상에 도전하지 못할 권위는 없다는 정신으로 이어져 이후 프랑스 68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로서 베트남전의 영향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도전을 내포한 베트남의 저항에 담긴 의미가 새롭게 와 닿았다. 시종일관 강연자께서는 베트남의 반프랑스전과 베트남전은 베트남 민중의 자존을 지키는 전쟁이라고 거듭 역설했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명분은 다양하다. 그리고 전쟁의 피해와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모든 전쟁은 나쁘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곤 한다.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그 모든 전쟁에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 대항했던 저항 정신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전쟁이란 현시적인 싸움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 권리, 부당한 권력 남용에 대한 거부권 등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권위와 권력에 맞서는 정신, 그것도 하나의 저항전쟁이다.

 

어느 곳에 서 있느냐는 우리의 시야를 제한한다. 다른 자리에 서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역사를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인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 다르게 역사를 써온 베트남 민중을 통해서 변화의 힘을 확인한다. 현명한 지도자를 탄생시키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힘 역시 민중에게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민중이 자존감을 지킬 때 가능할 것이다.

 

평소 9시면 끝나는 강연이 참석자들의 질문이 이어져서 늦은 시간에 끝났다. 여운이 남은 분들과 함께 사무실 근처 주점에서 뒤풀이를 했고, 송필경 의장님의 유쾌한 입담은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독재에 항거했던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 <사이공의 흰 옷>80년대 말 읽었다. 그때는 독재와 저항의 역사에 대한 공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후 황석영 작가의 <무기의 그늘>로 읽은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래서 베트남에 대한 내 기억과 지식의 정도는 8~90년대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시간에 개인사에서 우연히 마주친 베트남에 대한 천착이 개인의 삶에 주는 변화의 의미를 생각했다. 단순히 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깊은 이해로 이어지고 지식 차원에서 나아가 역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인간에 대핸 이해, 그리고 인간애의 실천으로 변화한 점이다.

 

지금 내게 송필경 선생님의 베트남 같은 것은 무엇일까? 라고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