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하는 지하철 안에서 읽느라 독서가 더뎠다. 강연을 앞두고 부랴부랴 읽었다. 마지막 인터뷰를 읽고 나니, 다분히 의도적인 구성이 아닐까 생각했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테레즈 클레르와 끝에서 두 번째 폴린 일리에는 공교롭게도 68사건을 경험한 2세대 페미니스트와 21세기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라는 점, 5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성을 옥죄는 ''에 대한 규제는 페미니스트의 핵심 과제였다. 마지막 장에 심영길 씨 인터뷰는 반공이 독재의 징후라는 것으로 끝난다. 페미니스트와 반공(반공의 변주 종북 좌파와 좌파)은 현재 우리 사회에 대표적인 여성과 진보 혐오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책 제목 프랑스의 생활좌파들처럼 한국인 두명을 포함한 인터뷰 대상은 모두 프랑스에 살고 있다.

 

작가가 왜 '생활좌파'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짐작했던 부분이 목수정 작가의 대구 강연 후 정리되었다. 68사건(프랑스 사람들은 68‘혁명사건으로 부른다고 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혁명이라 할 수 없으니 그들의 명명이 맞는 것 같다) 이후 프랑스 좌파가 81년 사회당의 미테랑이 집권할 때까지 과정은 지난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거기서 멈췄다. 그들은 안주했고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어 우경화되면서 좌파로서 정체성을 잃었다.

 

그 지점에서 작가는 소위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고 불렸던 집단들, 진보 정당을 위시한 그들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정리한 좌파는 "함께 행복하고, 질문의 노마드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다"

 

'무엇'이란 목표와 결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라는 방식과 과정에 열중한다. 그렇기에 좌파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좌파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몸에 배인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무엇''결과', '목표'에 일희일비 않고 설사 좌절하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생존이 아니라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질기고 오래 좌파로서 산다.

 

'좌파'는 특정집단을 배제하는 기준도 이데올로기의 잣대도 아니다. 저자가 만난 프랑스의 생활좌파는 기존과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이웃과 더불어 오래도록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산다. 공무원이든 고위 관리든 좌파일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프랑스의 좌파는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수위의 예를 들면서 정년을 앞둔 그에게 물질적 도움이 아니라 그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몸으로 나서서 돕는다. 모금 활동이 잘 안 되는 곳이 프랑스라고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금활동을 당연시하고 제 살 파먹듯 여기저기 후원금을 요청하는 우리와 비교된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원천은 오랜 역사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민단체 몇 곳에 몇 푼의 후원금으로 훌륭한 시민이 된 양 자기 위안을 삼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니, 프랑스에서 좌파로서 산다는 것은 머리와 심장, 발이 따로 움직이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좌파의 공통점 중 하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소양은 세상을 낯설게 보고 즐기면서 사는 기본이 아닐까. 나도 좀 즐겁게 노는 법, 때론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법을 익혀야겠다.


♣ 다음 모임은 영덕 주민투표 일정 때문에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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