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의 최정산으로 산행지를 결정한 계기는
아무래도 가깝고 가벼운 산행이 될 것 같다는 느낌에서였다.

그렇지만 잔뜩 차오는 부담은
우리 형편에 사전 답사가 불가능한데다
이번 산행지는 나 자신도 처음 가는 산이란 점과
남지장사와 운흥사, 두 번의 답사로도 출발 지점과 산행 코스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안태주님께서 한 번 가 본 곳이라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운흥사를 참배하고 주지 스님께 인사드린 후 산행코스를 문의 했지만,
가르쳐 주시는 스님도 썩 자신 있어 하는 표정이 아니셨다.

일단 9시가 되어 운흥사 오른쪽 비탈로 시작하여
리본을 따라 산에 들었다.
적당한 숲으로 하늘을 가려주는 삼림의 기분 좋은 내음은
출발을 더욱 상쾌하게 하였다.

그러나 곧장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은 끝이 없을 것 같이 하늘로 이어졌고
목 젖까지 차 오르는 숨 소리를 옆에서 들을까 힘겹게 눌러 쉬는데,

이쪽에서 “시....”
저쪽에서 “발...”
최정산을 결정한 나를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도 숲이 우거져 햇볕을 바로 받지는 않는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선두는 이미 보이지 않고
산행 45분이 막 지날 즈음...
뜨거운 날씨와 계속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 길
그리고 선두의 무지막지한 돌진으로 힘겹게 뒤 따르던 일행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늘 가장 든든해 보였던 조*현 씨가 오늘은 가장 먼저 탈색이 되었다.
창백한 모습에 겁먹은 나는 우선 편하게 눕게 하고는
십선을 여물게 따주고 삼리를 지압했고,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급하게 청심을 시켰다.
미안함에 오기부린 깡다구인지 아님 진심인지 괜찮다는 본인의 싸인을
믿고 일행과 합류 하였다.

일찌감치 “낙오 점 시오 점 케이 알”을 반복하며 아직 취중인듯
제일 후미에서 헉헉대며 엄살 뜰 던 일행도 간식 땐 아주 씩씩하였다.
일행들은 벌써 허기가 지는 지 점심 타령하는 이가 있었고
가져온 과일을 여기저기서 내어 놓는다.

800 고지를 넘어서자 군데군데 군수품 쓰레기, 넘어진 전주, 폐 드럼통
그리고 반쯤 파묻혀 썩고 있는 지뢰밭이란 협박용 푯말...들이
늘어져 있어 인근에 군부대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녹음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속은 엉망이었고 오염이 엄청 심하여
오를 때 이미 각 회원들의 쓰레기봉투가 가득 찼다.

큰 기대로 약 세 시간에 걸친 힘겨운 산 오름 끝에 펼쳐진 광경은
꽉 막힌 철조망과 그를 따라 길게 파 헤쳐진 임도가 각종 쓰레기를 담고
나란히 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수려한 산세를 여지없이 망가트린 문명의 철 구조물이
오만하게 버텨 서 있었다.
임도를 따라 주암산 쪽으로 가는 길에 보기에도 너무 징그럽고 무섭기 까지 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붉은 개미집을 발견했는데, 정상 부근에서 주암산 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것 역시 환경오염과 관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숲을 찾아 식사를 마치고는 다음 달 산행 계획을 포함한 회의를
마치고 주암산 쪽으로 하산 하였다.

주변의 지저분한 쓰레기 속에서도 화사한 모습을 가시로 감싸 들어내는
엉겅퀴 군락이 아주 멋있었다.

1시쯤에 하산 길에 들어서 한참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고도계의 눈금은
변할 줄 모른다.
결국 가든 길을 돌아오고, 돌아와도 아니어서 또 돌아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바닥은 늪으로 질퍽하고, 숲이 우거져 오후 두시인데 컴컴하였다.
간 혹 쓰러진 푯말에 그려진 지뢰와 발목의 그림은 오금을 저리게 하고
여기저기서 누구 들어 라고 하는지 불만의 소리가 들린다.
길 가의 돌들엔 물 먹은 이끼로 몹시 미끄러워 궁둥방아 찧는 소리가
들린다.

초반에 쇼크가 있었던 *순* 씨도 걱정이 되어 점점 불안해진 난
시계에 붙은 나침반의 NW 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내려갔다.

종아리가 뻑쩍지끈 해져 올 즈음 선발대에서 길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3시 30분 쯤 모두 무사히(?) 하산했다.

정미스럽지 않고 그저 시끌벅적한 정미네 집에 가서 껄쭉한 동동주 두 잔과
타다만 메기 찜을 먹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우짜다 오늘 산행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2003   6   23

千 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