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 길에 할아버지 한분이 가지런하게 다듬어진 쪽파 한꾸러미와  아이 머리만

큼 큰 호박 두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한참을 지켜보았다.

바로 옆에는 대형할인마트가 있고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계신 할아버지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아이 병원 볼일을 보고 나와 걷는길에 할아버지는 여전히 앉아계셨다.

다가가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천원이란다. 그 많은 쪽파가. 천원이란다

쪽파를 사서 별로 쓸데도 없는데 어떡하지 하다가 그래도 한 아름 샀다. 옆에 호박은 얼마냐니까 그것도

아이 머리만큼 큰 호박 두개가 천원이란다. 호박도 샀다.

떨이해서 고맙다며 할아버지는 연신 인사를 하셨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우시겠지란 생각을 하니 나도 마음이 좋았다

무쳐도 먹고 뽂아도 먹고 전도 해 먹으면 되겠다며 유모차 밑 짐칸에 물건을 실었다.

아이들 과자값도 안되는 천원을 건네며, 저것들 키워내느라 구부리고 펴고를 수없이 반복했을  허리에

부치실 파스값이나 나올까 싶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두부조림을 하는데 쪽파를 총총 썰어넣었다.

약하나 안치고 키웠다는 할아버지 말씀 탓인지 파가 싱싱하고 매운냄새가 침을 돌게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평생 자기 집 한칸 없이 사시면서도 틈만 생기는 공간에다 고추, 가지,오이, 토마토 등등 갖가지 채소와

야채를 심으시던 아버지였다. 땅도 없고 집도 없으니 화분을 이용하시거나  흙을 구해와서 베란다 작

은 공간에  밭을 만드시곤 하셨다.

집마련해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 막내가 얼마나 기쁘셨을까 빗자루 가지고 달려와 청소하시고 집단

장하는데 남편과 며칠을 보내셨다.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여기 베란다에 상추 심으면 되겠다'하신다.

정성을 기울이지 못하는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야채는 결국 다 죽여버리고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고무나

무와 벤자민은 너무도 잘 자라고 있다. 

어느날이면 우리집 아파트 현관 문고리에 야채담은 비닐을 대롱 대롱 달아놓고 가시던 아버지가 그립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