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목요일


 밤 12시, 막 집에 들어왔다.

 대전에서 열린 활동가 토론회를 다녀오는 길이다.

 지금의 환경연합 사태와 관련해서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이 조직 쇄신안과 관련된 의견을 모아보기 위해서 만났다. 나로서는 처음 참석하는 전국대회가 이렇게 무거운 안을 가지고 토론하는 자리라 마음이 아프다.


 몸이 아파서 가지 못한 공처장님을 제외하고 사무처의 모든 활동가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기차를 탔다. 가는 내내 모두들 애써 표정을 밝게 해 보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진 숙제가 버거워 표정 관리가 잘 안 된다.


 지난 월요일, 대구지역에서도 활동가들 내에서 결의가 있었다. 내년부터 정부와 기업의 프로젝트를 받지 않겠다는 것과, 거기서 생기는 사업비의 공백을 임금을 삭감하는 것부터 해서 메워나가겠다는 결의였다. 생계가 걸린 문제임에도 모두들 자발적으로 두 말 않고 기꺼이 의견을 모은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초심으로 돌아가 환경운동가로 거듭 나겠다는 오롯한 순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의 그 순정한 마음만으로는 헤쳐나가기 힘든 조직의 위기가 활동가들에게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고개를 들기 힘들만큼 죄송스럽다. 환경운동의 대의에 기꺼이 마음을 바쳐온 회원들에게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어떤 회원은 위로를 건네시며 개인의 비리를 조직의 비리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하셨다. 또 어떤 분은 지역은 중앙의 문제와는 별개인데 무에 그리 미안해하냐고 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지금 문제의 원인이 단순히 중앙 조직에, 몇몇 부도덕한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가는 아무도 없다. 지금의 사태는 과도한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 진행과, 엉성한 회계 체계, 외연의 확대에만 치우친 성장주의 운동방식 등 누적된 문제들이 곪아터진 것이었다.


 대전에서 만난 전국의 활동가들 역시 생각을 같이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급급한 대책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철저한 자기 반성이고, 그에 따른 실질적 혁신이라는 데 모두들 뜻을 모았다. 그러나 문제 해결이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도 많다.


 두 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밤 열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조직 문닫아야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음에도 이상하게 올 때보다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모두의 마음에서 환경운동에 대한 진정성을 엿보았기 때문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경운동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비관할 까닭이 없다고 판단한 때문일까?


 대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도닥거리면서 가슴이 따스해졌다. 내가 잠시 잊었던 원칙들이 생각났다. 지금의 환경운동은 활동가 몇몇의 작품이 아니라 시민들의 꿈이었다. 지금의 환경운동연합 역시 임원들 몇몇의 작품이 아니라 회원들의 꿈이었다. 시민과 회원들은 여전히 우리의 환경을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 그들이 있는데 걱정할 게 무언가, 그들과 함께하면 되는 것을...


 이글을 쓰다 보니 내일 <회원의 밤>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떠오른다.
 음... 푹 자고 내일 또 일해야지.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