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3일 목요일


 지리산 숲길 걷기 참가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신청 마감을 한참 앞두고 자리가 다 찼다.

 가족단위로 신청하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 신청서를 정리하면서 또 생각이 엉뚱한 데로 빠져든다.

 주로 신청은 엄마들이 하시는데, 자기 이름을 부르고 아빠 이름과 아이들 이름을 불러준다. 그렇게 받아 쓰다보니, 엄마 성만 다르고 아빠와 아이들의 성이 나란히 적힌다.

 한 가족인데 엄마만 성이 다르다. 호주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너무도 익숙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아이들의 성씨. 생물학적으로 엄마와 더 친밀한데 왜 성은 대부분 아빠를 따를까?

 이상한 게 그것뿐인가? 엄마가 목숨 걸고 낳았는데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고, 대부분 엄마가 보호하는 시간이 더 많은데도 보호자는 아빠 이름을 적고…….

 신청서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자꾸 자꾸 엉켜든다.

 기분이 꿀꿀해진다. 그러나 일이 많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계명대 목요 철학 세미나를 참석했다. 김해동 교수님이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강의를 하신단다. 장철규 간사와 함께 참석했다.


 성서 계대에 도착하니 학교 안에서 무슨 촬영을 한다고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다.

 “어, 뭐지? 가보자.”

 “차간사님은 봐도 모르잖아요.”

 연예 정보, 드라마, 스포츠에 꽝인 나를 은근히 무시한다. 쳇.

 그런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쟤들이 누군지, 뭘 찍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를 무시하던 장간사도 모르기는 마찬가지. 휴대폰을 들고 연예인을 찍고 있는 학생에게 묻는다.

 “뭐 찍는 거에요?”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요.”

 그 대답을 들어도 오리무중인 건 마찬가지. 장간사에게 물었다.

 “그런 드라마, 혹시 알아요? 누가 나오는데요?”

 “몰라요.”

 저나 나나 ‘오십 보 백 보’구만. 아는 체 하기는…….


 강의시간에 맞춰서 강의실로 들어가니 사회자의 간단한 소개가 있고 바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 아, 대학 다닐 때는 등록금 아까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줄기차게 빼먹던 강의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역시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데.   

   

 김해동 교수님의 강의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 주셨다. 이 강의를 놓쳤더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을 만치.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을 나만 들으려니 미안해져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우리 회원들과 한 번 더 청해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구온난화가 어떻게 전지구적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각국의 입장이 어떻게 묘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 온난화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근거들이 얼마나 주관적 해석이 가능하고 비과학적인지 조목조목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다. 화석연료에 기대어 성장해온 지금의 산업자본주의와 그 생산양식이 낳은 사유체계가 변화되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은 이 문제가 과학과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라고 정리해주셨다.

 과학자에게서 ‘지구온난화’가 철학적 문제라는 얘길 듣다니, 신선하다. 그러나 그 사유의 과정이 더 없이 명쾌하다.

 오늘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내 인식을 확장시켜봐야겠다. 공부할 거리가 생겨서 기쁘다. 잠자고 있던 머리가 오랜만에 움직인다.

 과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지적 사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도와주신 김해동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