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화요일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쓰레기통부터 책상 위까지 스윽 훑어보았다.

 ‘앗, 이 인간들이 청소 안 했구나.’

 쓰레기통도 안 비우고, 책상 위 걸레질 흔적도 없고…….

 먼저 와 있는 장간사님께 한 마디 쏘아주었다.

 “청소 안 했죠? 내 이럴 줄 알았어, 응? 청소 검사 안 한다고 청소 안 하는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리다니.”

 “아니, 우리는 청소 하려고 했는데, 차간사님이 가시고 나서부터 왜 그리 업무가 밀리는지. 정말 몸은 바쁜데도. 마음은 청소하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대꾸한다.

 선생님이 검사하실 때만 청소하는 버릇, 순전히 교육 탓이다. 인간들을 이렇게 타율적으로 만들어놓다니. 다시 한번 우리 교육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사무처 회의를 마치고 장간사님과 가야산으로 떠났다. 우리 소식지에 멋진 표지 사진을 장식하시는 이영수 회원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다. 어제 지리산까지 다녀온 나를 배려해서 장간사님이 운전대를 잡는다. 이럴 때 보면 어찌나 참하고 반듯한 청년인지. 아침에 청소 건으로 깐죽거린 거 봐줬다.


 날씨가 정말 좋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 가을 햇살, 가을 바람이다.

 오늘도 장간사님과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여기서 일하게 된 계기부터, 일본에서 유학할 때 겪었던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들 이야기, 재미있게 본 영화…….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이 사람이 가진 매력을 발견한다.
 공처장님이 나와 기질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다면 장간사님은 나와 사유의 방식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이토록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삶이 한없이 고맙다.


 이영수 회원은 지난 연말 편집위원회 송년 모임을 하면서 얼굴 본 뒤 처음이다. 너무 반가웠다.

 말로만 듣던 그이의 집은 정말 ‘사람이 살만한 집’, ‘사람들이 쉴만한 집’이다. 차를 마시면서 사는 얘기도 듣고, 연못 주위도 걷고, 배드민턴도 치고, 황토방에 뒹굴뒹굴거리면서 호사를 누렸다.

 집 주인이 따라주는 산뽕잎차를 마시며 가야산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어느새 하루가 다 간다.


 가야산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그이의 말이 내내 남는다. 그이는 자연을 사랑하려면 알아야 하고, 그리고 믿어야 하다고 한다. 자연이 가진 무한한 힘을 믿고,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진리를 믿지 않으면 진실로 사랑하기 어렵다는 그 말이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은 가장 치열한 감정이다. 그 치열한 감정은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상대를 마음깊이 신뢰하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는, 신뢰가 없는 사랑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혹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사랑하는 철학을, 내가 사랑하는 자연을 마음으로 믿지 못해 사랑을 기만한 적이 없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좋은 만남에 충만해진 마음을 안고, 올해가 가기 전에 책 싸들고 쉬러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황토방에서 창으로 내다본 가야산 전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새로 지은 나비모양 숙소


황토집. 뒤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쌓아놓은 장작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