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화


 아침에 출근을 하니, 정간사님이 주말에 아들과 만든 선물이라면서 동그란 볼을 상근자들에게 하나씩 주신다. 그때 오고 간 대화들이다.

 공, “이게 뭐에요?”

 정, “바스 볼이에요. 목욕할 때 쓰는 거.”

 구, “그라만 비누네.”

 정, “아니, 목욕할 때 물에 담그는 거.”

 차, “어, 우리 집은 욕조 없는데.”

 정, “족욕할 때 넣어도 돼요. 너무 많으니까 좀 잘라서 넣구요.”

 공, “우리 애들 좋아하겠다. 물에 넣으면 막 갖고 놀겠다.”

 정, “아니, 못 갖고 놀아요. 물에 넣으면 다 풀어져요.”

 차: “진짜요? 되게 신기하다. 음, 향 좋은데...”

 장: 내내 듣고 있다가 시큰둥한 얼굴로 책상 앞에 던져둔다.


 정말 선물을 하나 해도 뭘 알아야 하지. 원체 이런 쪽에는 문외한들이라서... 선물한 사람, 그게 뭔지 답변해 주느라 10분쯤 걸렸다. 어쨌거나 ‘정간사님, 고마워요. 잘 쓸게요.’   


 오전에 사무처 회의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여성의 전화’에 회의가 있어서 갔다. 나는 오래 전부터 대구여성의 전화 회원으로 활동해왔다. 지금은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위원장 모임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사무국장이 회원들 하반기 교육을 준비하고 있는데 좋은 의견이 있으면 내달라고 해서 환경교육을 제안했다. 좋은 의견이라며 검토해보겠다고 한다.


 돌아오니, 윤병로 회원과 홈페이지를 만들어준 김준호 씨가 와 있다. 준호씨는 올해 스물여섯 된 청년인데, 사무실 근처에 사는 인연으로 우리 홈페이지 개편 자원봉사를 자청한 멋진 친구이다. 묻는 말에만 수줍게 대답하고, (그러나 늘 할 말 다 한다.) 배시시 잘 웃는 너무도 매력적인 젊은이다.


 윤병로 회원과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다른 활동가들은 다 정신없이 일하는데 나 혼자 노는 것 같아서 찔렸지만, 회원접대 차원이라고 계속 우겼다. 사실, 신입간사 시절이 아니면 회원들과 속엣 얘기 나눠볼 시간이 또 언제 있겠나 싶어서 되도록이면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회원들과 얘기를 많이 하려고 애쓴다.

 근데 내 직설화법에 당황하는 회원들이 적잖아서 이거 영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윤병로 회원은 “충격이다.”고까지 하시니, 이거 참... 그래도 기분나빠하시지는 않는 걸 보니 내 진심이 통했나보다.


 여성문제, 정치 현안, 환경운동에 대한 얘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하다가 사진 얘기가 나왔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신단다. 그러고 보니, 소식지 운영위단상에 그 얘길 쓰신 게 기억난다. 사진에 대한 자기 철학을 가만가만 들려주시는데, 참 좋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음 방 한 구석에 가만히 놓아두는 즐거운 삶 한 꾸러미가 있다. 그 꾸러미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순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반짝인다. 이 분에게는 사진이 그것인가 보다. 잠깐이지만 그 소중한 꾸러미를 같이 풀어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가만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준호씨가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여성문제와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의외로 진지하고 깊은 생각이어서 내심 놀랐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청년이 가진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을 엿볼 수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을 내어서 서로의 삶을 나눠보고 싶은데 조만간 필리핀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니 아쉽다. 가기 전에 꼭 같이 차 한 잔 하고 싶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성향이다. 그러나 그 성향의 깊이만큼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즐거워한다. 공존하기 어려운 이 두 가지 성향이 동시에 내 속에 있는 걸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그러나, 자신과 만나는 걸 즐기는 사람은 자기 안에 에너지가 충만하기에 타인을 만나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음, 오늘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들을 많이 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