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귀국합니다. 완전 귀국입니다.

중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중국에서의 1년 반, 나름대로 의미가 깊었습니다.

옛 성현께서는 ‘본 것이 적으면 진리에 대해 의심하고,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벌레는 얼음을 의심한다.’라고 했었지요.

우물 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살펴본 것 같습니다.

제 나이, 우리 나이로 오십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농담했습니다.

“팔팔한 사십대에 조국을 떠나 오십 줄에 들어서 귀국한다.” (ㅋㅋ 썰렁했죠?)

제가 있는 산동성은 중국의 위인들이 많이 태어난 곳입니다. 공자, 맹자, 손자, 제갈공명 등등...

두어달 전에 공자의 고향(曲阜)에 다녀왔습니다. 공자묘에 가서 참배도 하고 기념관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공자께선 나이 오십이 되어 지천명(知天命)하셨는데, 저는 무엇을 했나 반성도 하고, 나도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다짐도 했었지요.

공자가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공직에 나선 걸 아세요? 하늘의 뜻을 깨닫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직을 처음 맡은 것이죠.

은근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이제 때가 왔다.”^^

 

귀국하는 저를 위한 환송 자리에서 한 한국인 친구가 묻습니다.

“형, 곧 귀국한다는데, 한국 괜찮은 거야. CCTV에서는 곧 전쟁 날 것처럼 보도해. 전쟁나면 형 예비검속 걸리지 않나?”

사실 이 친구는 특이한 경우인데, 제가 만난 현지의 한국사람 중에 전쟁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 제일 태평한 게 한국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맞긴 맞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조금 다릅니다. 연평도 사건이후 그들과 얘기하는 자리에는 한국의 전쟁 이야기가 빼놓지 않고 화제에 오릅니다.

아마 전쟁을 두려워하는 중국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언론매체의 영향이겠지요.

사실 우연히 발생하는 작은 전투는 많아도 우연히 발생하는 전면전은 역사에서 찾기 힘듭니다.

전쟁은 치밀한 전략과 계산의 산물이고 그 득실이 분명했을 때 일어납니다.

그런데 현재 남북한, 중국, 미국 모두에게 전쟁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가능성은 적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상황은 늘 유동적입니다. 긴장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오판을 하게 되거나, 객관적으로 득과 실이 역전될 수도 있지요.

그래서 한판 주먹다짐을 했더라도 화해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요즘 대통령과 정부가 강경한 대북공세를 취하는 걸 보면서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강경발언은 겉으로는 전쟁불사 발언이지만,

그 이면을 보자면 거꾸로 북한과의 대화(예컨대 6자회담 재개 등)를 위한 준비과정의 성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전쟁은 국가와 국가, 남북한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 내부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연속됩니다.

저는 평화주의자지만 한편으로 전쟁을 원합니다. 우리네 삶을 규정하는 여러 조건을 혁신해 가는 새로운 도전, 새로운 전투를 저는 원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복지논쟁이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환영입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이런 논쟁을 해야 합니다. 국가운영시스템, 민생보장을 위한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제대로 토론해야지요.

지역감정이나 조장하고, 남 흠집 내는데 골몰하는 후진정치, 민생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권력투쟁,

자기네들 이권다툼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우격다짐하는 정치는 이제 그만두어야죠.

태산홍모(泰山鴻毛)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산과 기러기 털, 무거움과 가벼움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뜻이지요.

민생의 투쟁은 泰山이요, 권력내부의 투쟁은 鴻毛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정치권이 이 문제를 가지고 제대로 된 전투를 한바탕 벌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이 논쟁이 정치권만의 논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시장통에서도, 학교에서도,

민초들의 술자리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누구 손을 들어줄지, 우리나라가 어떤 길을 가야할지 그것은 결국 국민들이 결정해야 할 몫이니까요.

 

귀국해서 정신 좀 차리면, 또 편지 쓰겠습니다.

추위가 대단합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 뜻한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산동성 웨이하이 바닷가에서

이연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