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변론

 

10년도 훨씬 지난 것 같다. 제목도 아련하다. 줄거리도 아련하고, 당시 연극배우였던 손숙 씨가 변호사로 나왔던 영화였다는 것밖에는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앞뒤 전후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손숙 씨가 연극배우다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변론을 하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아, 변호사라는 직업이 참 멋있구나!’ 불의에 맞서 신념에 찬 목소리로 가치와 정의를 주장하는 모습에서 경외심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호사라는 일이 그토록 멋있는 일이 아니라 골치 아프기 그지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금을 울리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 그 오래된 영화를 기억하게 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11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는 4대강 살리기의 낙동강 소송 마지막 심리가 진행되었다. 낙동강 소송은 국민소송단이 원고가 되어 정부를 상대로 하천공사 시행계획 취소 신청(가처분)을 부산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이다. 지난 1월 첫 심리를 시작으로 모두 여덟 차례의 변론이 있었고 현장검증도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4대강 사업의 법적 위헌성, 환경적인 문제 등 다양한 내용이 다루어졌다. 이에 대한 최종 판결 선고는 12월 10일로 예정되어 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이 작성한 최종 변론서 내용엔 이제까지의 변론에서 보여주었던 법적 절차의 문제, 환경적인 피해와는 좀 다른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4대강 사업을 왜 해서는 안 되는가」 그 이유를 논리 정연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아이가 묻습니다. 엄마는 왜 나를 사랑해? 이런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순간 당황하다가 기껏 할 수 있는 말이 ‘엄마니까’라는 것을요. 아이가 또 묻습니다. 엄마니까 왜 사랑해? '……'

너무도 당연한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당황합니다. 4대강 사업을 왜 반대하는지 하는 물음 역시 아이의 물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물을 막으면 강바닥을, 모래를 파헤치면 강이 아파합니다. 강이 왜 아픈지, 어떻게, 얼마나 아플지 묻는 것은 어리석은 물음입니다. 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픕니다. 직접 아픔을 못 느낀다고 아픔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과 우리가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장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4대강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중략)”

 

최종 변론서를 읽고, 7살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지현아~ 사랑해~”

“왜 사랑해?”

“그냥~딸이니까~”

“에이, 세상에 이유 없는 게 어디 있어?”

“그럼 넌 왜 엄마 사랑해?”

“나? 그거야 엄마니까”

“봐~ 너도 이유를 말 못하잖아.”

“세상에 자기를 낳아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너무 당연한 것에 대해서 주고받은 딸과의 대화는 이랬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그것도 과학적(?)으로. 공장이나 공단과 같은 대규모 환경 유해 시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면 과학적으로 입증하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지금 강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변해 가고 있다. 해평습지에 날아오는 새들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화원유원지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의 모래톱은 사라져 가고 있다. 몇 마리의 새들만이 포클레인 굉음 사이에서 위태위태하게 먹이를 찾으며 떠다니고 있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얘기해야 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다. 과학이 가치에 우선하고, 논리가 감성에 우선해야 한다는 잣대는 과연 누가 만든 것인지 되묻고 싶다.

 

공정옥(2010년 11월 30일 매일신문 3040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