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선배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 시의 제목은 ‘나는 나를 지나쳐왔다’였다

 

태어나서 철이 들고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관심과 더듬이는 세상을 향해 있었던 것 같다.

학생으로서 자식으로서 부로로서 사회인으로서 여러 가지 역할 속에서 자신을 재촉하고 다그치면서 말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삶의 일대전환기를 맞이하였다.

머리와 입으로 외치던 ‘환경운동’을 내 삶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은 나 스스로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수하게 만들었다. ‘환경운동’을 왜 ‘생명운동’이라 하는지 어렴풋하게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출산 전부터 모유먹이기와 천기저귀 접는 법 등을 남편과 함께 익히면서 태어날 생명을 준비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을까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고 오랫동안 모유수유도 거뜬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편리하고 간편한 일상의 안락함 속으로 아주 빠르게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즈음에 만난 것이 ‘생활단식’이었다.

 

오랜 시간의 모유수유가 끝나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불어난 살을 뺄 요량으로 ‘단식’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교육을 받고 생활단식의 방법을 숙지하고, 드디어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생활단식은 굶어서 살을 빼는데 목적에 있지 않았다. 교육 받을 때 ‘살 빼는 게 목적이신 분은 하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라는 강사의 말에 내심 찔리기까지 했다.

몸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당분은 산야초효소로, 염분은 죽염으로 섭취를 하고 물을 4L이상 마셨다. 새벽에 눈을 뜨고는 풍욕을 하고 하루 한번이상 냉온욕과 관장을 하면서 몸을 완전히 정화시키는 일을 5일 동안 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단식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전혀 불가능 한 일도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먹어왔던 음식을 앞에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 때로는 고통이었지만 때로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5일의 단식으로 세상만물의 이치를 다 깨달을 수야 없지만 얼마나 많은 욕심으로 배를 채워왔었던가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5일의 단식이 끝나고 15일의 보식은 정화된 몸을 새롭게 천천히 다듬는 시간이 된다.

오히려 단식기간 보다도 더 힘이 든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자기인내의 시간인 것이다.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한결 달라진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지난해와 올해 두 번의 생활단식으로 몸은 한결 가벼워졌고, 음식에 대한 욕심도 많이 사라졌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게 되는 ‘당연한’생활에 익숙해 졌고,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처음에 단식을 하려고 했을 때 가졌던 목적이외의 더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여름 초입에 했던 생활단식은 무더운 여름을 훨씬 수월하게 견디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하고 있다. 곧 나무의 푸른 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말 것이다. 그것은 이듬해 봄에 다시 돋을 생명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고 기다림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주어진 만큼 가지고 그 소임이 다 하면 다시 내어주기를 반복하는데 우리 인간은 어떨까.

무한하게 느껴지는 자연에서 얻으려고만 하지 과연 내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되면서 여러 사물에 대해서도 나름의 생명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곤 한다.

얄밉도록 잇속과 배속을 챙기려는 인간에게 자연은 화가 날 법도 할 터인데.

어디에다 물어볼까?

발밑에 기어 다니는 개미에게 물어볼까. 말없이 서 있는 소나무에게 물어볼까.

코스모스에게 물어볼까.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마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앙팡지게 살지 않으면 손해를 보거나 해를 당한다는 말로 해석되어 아둥 바둥 살아야 함을 시사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한 면도 있겠다.

그러나 눈은 뜨고 있으되 깨어있지 않음에 대한 경종이 아닐까.

‘생활단식’이 되거나 또는 다른 방법이 되거나 깨어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경험을 가진다면 그야 말로 ‘텅빈충만’을 만끽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공정옥(2010년 10월 5일 매일신문 3040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