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목요일


어제 저녁에 ‘책을 덮자’ 모임이 있었다.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책에는 길이 없다. 책을 덮고 사람 사이에 난 길을 찾아 떠나자."

 ‘책을 덮자’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말이다.

 사람 사이에 난 길…….

 요즘 그 추상적 의미가 구체태가 되어서 내 삶 앞에 드러난다.


 모임을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참 낯선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속엣 얘기를 터놓으며 삶을 나누는 친구들이 되어있었다. 사람들 가슴 깊숙이 이어진 길들이 보인다. 또 그들과 나 사이에 난 길이 보인다. 그 길을 산책하며 사색하는 시간들이 행복하다. 역시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말이 빛나는 진리다.


 오늘은 아침에 여성의전화 교육을 갔다가 늦게 사무실에 들렀다. 내일이 정간사님의 생일이라서 케이크 하나 사들고 가 함께 축하했다. 공선옥의 새 책과 생일카드를 건넸다. 언니는 현명하고, 선하고, 배려심이 많은 너무도 매혹적인 사람인데, 딱 한 가지 자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 게 흠이라고 적었다.


 좀 있다 여성의전화에서 같이 편집부 활동을 하는 영랑씨가 왔다. 같이 활동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첫눈에 나와 같은 부류임을 알아봤다. 사유하는 걸 즐기고, 행복해지기 위해 가진 것을 버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멋진 친구다.


 한참 즐겁게 대화하다가 회원가입을 하겠다고 한다. 순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아직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 친구의 상황이 떠오르고, ‘내가 혹여 부담을 줬나?’ 화들짝 놀라 만류했다. 그런데 오늘 오면서 이미 생각하고 왔던 일이라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환경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세상에, 이 친구. 알면 알수록 너무 괜찮잖아. 이 괜찮은 여자가 아직 애인이 없다니, 눈 제대로 박힌 남자들은 전부 어디 갔나…….


 저녁에 여성의전화 편집부 모임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다.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을 읽고 토론을 했다. 

 누가 뭐래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선택할 줄 아는 멋진 여자 목수정씨의 삶에 대한 지극한 감동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 역시 내가 그들의 가슴으로 산책 나가고, 그들이 내 가슴에 걸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심장 깊숙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정한 자매애가 가진 힘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 나로서는 과분한 그들과의 교감이 넘치는 축복이다.


 새로 산 휴대폰에 새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글귀가 요즘 내 하루하루의 삶을 보여준다. 내가 행복하다는 말을 달고 사니까 주위 사람들이 쉬엄쉬엄 타야지, 그렇게 한꺼번에 불타면 오래 못 간다고 충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원 없이 사랑하고, 미련 없이 일하고, 아낌없이 태우는 삶을 좋아한다. 그 삶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건 편견이다.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삶도 오래 갈 수 있다. 끝없이 새로운 장작을 집어넣으면 되니까.
 가진 것을 소진하는 활동은 내가 꿈꾸는 삶이 아니다. 나는 내 가진 것을 태우며, 또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어내는 삶을 꿈꾼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내 삶의 새로운 에너지다. 그것도 깨끗한 친환경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