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수요일


 “나 좀 우울해.”

 공처장님이 아침에 오자마자 건넨 말이다.

 “왜요? 오늘도 애들이랑 한바탕 했어요?”

 “아니, 애들이랑은 무사히 치렀지.”

 “근데 왜요?”

 “지하철 역에서 내려 걸어오는데 여든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등에 폐지박스를 주워서 스쳐 지나시는데, 난 그런 모습만 보면 생각이 많아져요.”

 삶이란 게 뭔지, 늙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국가가 개인의 삶에 대해서 책임지는 건 어디까지인지 따위 철학에서 사회, 경제 문제까지 머리가 무거워진단다.


 공처장님은 자주 이런 얘길 건넨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가슴이 저리고, 사소한 깨달음도 마음에 묻어두는 섬세한 사람이다.


 회원글쓰기 교육이 있는 날이다.

 시 쓰는 걸 배웠다. 시는 자신의 삶과 마음을 가장 쉽고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글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시라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획일화된 형식과 똑같은 해석을 강요하는 국어교육이 모두를 이렇게 만들었다. 안타깝고 아쉽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시를 쓰면서 삶을 충만하게 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고, 다른 단체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진다. 봉사란 게 뭐지?


 청소년기에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교회에서 애망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었다. 그 곳을 갔다 오면 늘 마음이 기쁨으로 차올랐다.

 대학 다닐 적엔 농촌봉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자두도 따고, 피도 뽑고, 양배추 모종도 심고 온갖 일을 다 경험했다.

 졸업한 뒤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치던 일,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던 일 등 내가 경험한 봉사활동들은 늘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봉사는 다른 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돕는 일이라는 말을 내 삶을 통해 확인했었다. 지금도 그 활동을 통해 내가 한 일보다 내가 얻었던 기쁨들이 먼저 떠오른다.


 뻔하고 형식적인 프로그램은 만들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면 우리 단체에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그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오늘 내내 그 고민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저녁, 운영위 회의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참석을 못 했지만 모처럼 활기 있는 대화들, 즐거운 회의였다. 운영위원들과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는 소중한 시간, 나누고 싶은 얘기들이 많은데 늘 시간이 부족하다. 더 오래 더 많은 내용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