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과 함께 그해 가을 첫아이를 낳았다.

나름 출산관련한 책들을 읽으며, 행복한 출산, 폭력없는 출산을 위해 호흡법이나 가족분반법, 정신이완

법 등에 대한 방법들을 배우고 익혔다.

공부를 열심히 했었던 탓일까. 진통이 시작되고 2시간 30분만에 아이는 수월하게 나왔고, 조용히 태

어난 아이는 아빠의 탯줄 자르는 손놀림과 함께 그제서야 '으~~앙' 울을을 터트렸다.

그동안 출산에 대해서 배운데로 난 병원에 있는 삼일동안 젖병을 물리지 말아달라고 간호사에게 요청했

다. 태어나서 처음 분유를 맛보면 젖을 잘 먹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모유수유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

기 때문이다.

난감해 하던 간호사는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겠다고 하였다.

내심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한줌도 안되는 작은 아이를 삼일동안 물만 먹이게 하는 것이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를 믿고 나를 믿으며 어서빨리 젖이 돌아 아이에게 젖을 물릴수 있기를 바랬다.

병원에 있는 동안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와 모유실에서 젖을 물릴 수가 있다.

대여섯명의 산모가 둘러앉아(거의 대부분 모습은 헐크같다 ㅎㅎ)조심 조심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고 있

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심이 없거나 자던 잠을 계속 자거나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배가 고파서인

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아직 나오지 않는 젖을 힘껏 빨아대면서 빈젖을 '쪽쪽'거리기까지

했다.

함께 있던 산모들도 '어머 저 애기 젖 빠는 소리 좀 봐' 그러면서 신기해 했다.

그리고 다음날 조금씩 젖이 나오기 시작했고, 아이는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면서 눈도 뜨지 않고 젖

을 먹기 시작했다.  집에 올아와서도 40도가 넘는 젖몸살로  출산에 버금갈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그러나 아이가 힘껏 젖을 쭈~~욱 빨면 젖몸살이 이내 사라져 버렸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을 하면서 모유를 담을 수 있는 아이스팩과 휴대용 유축기를 가지고 다니면

서 세시간마다 한번씩 젖을 짜두었다. 저녁에 퇴근할때 나의 손에는 200cc 병 네개에 젖이 가득 담겨 있

었다. 물론 아침 저녁에는 젖을 물렸다. 그렇게 시작한 젖먹이기를 첫째 아이는 12개월 둘째아이는 20개

월을 먹였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못 먹고, 밤에 두세번은 깨어나 젖을 짜내어야 하고, 외출할때면 불어나는 젖

때문에 불편하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안전하고 건강한 것을 아이에게 줄 수 있다

는 행복감이 그런 불편을 이겨내게 했다.

지금도 큰 잔병 없이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작지만 내가 줄 수 있었던 사랑에 감사한다.

세상에 살면서 생각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다. 비록 부모와 아이 사이 일지라도, 대신해 줄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아주 어릴때의 보살핌은 그 시기가 지나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절실히 느낀다.

아이를 안고 바라보면서 젖을 먹일 수 있었던 그 행복했던 시간이 더 없이 소중했다는 것이 시간이 흐르

면서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 대구환경연합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5-12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