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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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 모임을 제안한 문양식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가운데)

 

오후 3시 동촌, 햇살은 봄이라는 낱말보다 따뜻하다. 5명의 어른과 4명의 어린이가 모였지만 강변을 걷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별한 준비운동 없이 목, 발목, 허리만 잠시 돌리고 출발, 아이들은 걷기를 넘어 질주다. 정해진 길이 아닌 길을 길처럼 걷고 달리고 던질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강으로 던진다. 어른들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리고 편안하다.

옆으로 자전거들이 달린다. 가볍게 달리는 이들도 있다. 속도에 대한 부러움은 없다.

그저 걷는 것으로 좋다.

 

비릿한 강의 냄새가 다소 불편함을 주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새들의 끝없는 움직임이 냄새를 잊게 한다. 인간이 만든 방죽이 강을 막고 인간이 버린 오물이 더해져 냄새가 생겼다.

냄새는 아픈 강의 호소다.

 

죽은 거북이 두 마리를 아이들이 묻었다. 죽은 것을 여기에 버린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살다가 죽은 것일까? 이유보다 더 먼저 다가오는 것은 안타까움이고 쓸쓸함이다.

떨어진 꽃, 말라버린 풀을 볼 때는 생기지 않는 감정들이다.

 

유채꽃이 반긴다. 다 같은 꽃인 줄 알았는데 갓꽃도 있단다. 잎으로 구분을 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쓰러진 나무들이 있다. 뿌리의 반은 하늘을 향하고 나머지 반은 강물에 걸쳐있다. 그 반의 힘으로 나무는 온전히 가지에 영양분을 전달하고 마침내 잎을 피워냈다.

때로 삶은 그처럼 굳세지 않으면 이어갈 수 없는 것이다.

 

돌아갈 지점에 앉아 모임의 이름을 생각한다. ‘길벗’.

길에는 많은 벗이 있다. 벗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죽음은 생명을 생각하게 하고 사람은 자연을 생각하게 하고 아이는 어른을 생각하게 한다.

모두가 벗이다. 그래서 길벗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지은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찾은 것이다.

 

하얗게 변한 잔디를 모아 둥지처럼 만들고 그곳에서 웃고 즐기는 아이들이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남아있다.

동촌 강변에서 만난 벗들, 다른 길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길벗’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