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 변홍철 선생님과 함께 했던 두런두런 인문학 10월의 만남은 그의 시를 낭송하며 시작했다. 웹상에 떠다니는 시 편으로 시인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시인이 직접 복사해온 9편의 작품을 읽으며 비로소 그의 세계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농사짓는 시인 서정홍에 의하면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다.

 

어려운 걸 / 쉽게 쓰는 사람이란 정의를 기준으로 한다면 변홍철 시인은 시인임에 분명하다. 소위 문단의 등단절차를 거치지 않고 어느 날 출두명령을 받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시인이라고 답을 하면서 그는 스스로 시인이 되었다. 1992년 군복무 시절에 쓴 가을날의 면회란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의 시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분단 조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는 감회가 철조망 없는 사랑이란 시어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016.jpg

<사진이 좀 흔들렸네요...아마도 시가 주는 감동 때문이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시인으로 호명 되는 절차는 인정의 절차이면서 사회적 타자에 의해 호명된 시인의 이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변홍철 시인이 그러한 호명의 절차를 거부했다는 것은 그가 삶과 시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 있다. 그의 태도는 부르고, 불리는 자의 위계적 질서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후쿠시마와 삼평리가 다른 세계가 아니며 로드킬당한 짐슴의 목숨과 삼평리 접시꽃’, ‘숨바기꽃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의 시가 향하는 곳은 모두가 더불어 사는 나라, 공화국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상호의존종교와 과학과 시의 뿌리가 하나이며 그것은 사랑과 삶의 기술로 잇닿아 있다.

 

시를 낭송하고 관련된 에피소드를 듣다가 자연스레 강연은 삼평리 할매들로 이어졌다. 자연을 대하는 할매들의 자세는 겸허를 넘어 경건했다. 한전에서 농성장과 이웃한 논을 포크레인으로 난도질할 때, 할매들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통곡을 했다는 일화는 삼평리 싸움의 힘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게 했다. 일생을 땅과 함께 해온 분들의 몸에 새겨진 생명애는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이 아닐까. 무의식이란 말로도 부족한 몸에 각인된 땅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지식으로 익힌 게 아니기 때문에 끈질기다.

 

폴란드 시인 루제비치는

 

시인이란 매듭을 끊는 사람이고

스스로 매듭을 연결하는 사람이다

시인이란 넘어지는 사람이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다

 

시인이란 떠나가는 사람이고

결코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시인 변홍철이 일상의 안주를 '떠나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끊고 연결하는 매듭'은 그가 삼평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매일 시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두런두런 인문학은 <대구환경운동연합>의 한승훈 부의장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 에너지 편을 듣습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꼼수를 전기를 중심으로 꼼꼼히 따져보는 시간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열려있는 강연입니다. 많은 분의 참석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