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던 인물과 누군가를 통해 알게 되는 인물 중 어떤 모습이 진실에 가까울까? 어떤 사람의 진실 된 모습이 있기나 한 것일까?’

 

<두런두런> 인문학 세 번째 강연 이슬람 공포증과 유럽 자유주의 그리고 장정일을 들으며 머릿속에 떠나지 않던 의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세계아동문학 시리즈에서 봤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인공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그야말로 글로벌한 세상입니다. 프랑스 풍자 신문 샤를리 에브도테러 사건을 일으킨 이슬람인의 테러가 발단이 되어 동유럽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제크는 신을 불쾌하게 하는 생각이란 책을 발간합니다. 영어판이 채 간행되기 전에 한국어판을 읽은 소설가 장정일과 문화비평가 이택광 선생의 지상(紙上) 논쟁을 계기로 영문학자 이승렬 선생님은 문제의 그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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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자료로 주신 6쪽에 달하는 선생님의 지제크 독후감은 지제크는 물론 장정일과 이택광 논쟁을 넘습니다. , 저자 지제크의 주장과 요점에 머무르지 않고, 그가 놓친 부분을 짚어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대안을 제시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책읽기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물론 저자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렬 선생님의 강연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을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제크의 책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서구자유주의의 관계, 두 이념의 차이, 특수성에 기초한 이슬람주의와 보편성에 기초한 서구자유주의의 위상 그리고 이슬람주의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모르므로 여기서 지제크의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날 선생님의 강연 중 인상적인 내용은 대부분 보편이라고 생각했던자유와 평등이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부르주아 집단의 이익에 기초한 특수한자유와 평등이란 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제크의 책에서 무의식적으로 망실한 우애야말로 특수한 이슬람 세계와 공존할 수 있는 가치라고 주장합니다. ‘우애는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 평등과 더불어 박애라는 이름으로 혁명적 가치를 나타내는 슬로건 이었습니다. 여기서 박애‘brotherhood’로 역시 부르주아 집단의 우애를 뜻합니다. 깐깐하게 따지면,‘brotherhood’형제애혹은 인류애로 번역되지만 그 기저에는 여성그리고 여성과 같은 의미로 타자화 하는 비백인,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혹은 우애)는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이슬람주의와 마찬가지로 특수한 가치입니다.

 

그렇지만 이승렬 선생님은 자유와 평등이 소유에 대한 자유와 평등으로 제한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 축적의 자유와 평등에 집중되어 잊혀진 항목’, 우애의 가치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실현시킬 것인가를 성찰해야 될 때라고 주장하시며 우애의 정치에 주목하십니다. 이때, ‘우애는 경계를 허물어 모두를 균질화시켜버리는 어떤 형태의 전체주의 체제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의 높이를 낮추고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의 다른 생각을 나누는 일입니다. ‘경계를 낮추고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의 다른 생각을 나누는 일형제애의 경계를 낮추고 여성과 남성, 장애와 비장애, 백인과 비백인, 늙은이와 젊은이, 서양과 동양 등 이분법의 세계를 허물고 다양한 타자와의 만남을 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애의 정치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라는 상이한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는 방식, 잠정협약의 원칙에 의해 실현가능합니다. 그것은 아래로부터 실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원칙이 소멸하지 않을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서구에 의해 폭력과 야만의 상징이었던 이슬람에도 이러한 원칙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녀평등, 생태주의, 협동조합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를 일구어내는 쿠르드 족의 로자바 혁명은 자치 단위 칸톤으로 구성된 조직을 결성하여 상향식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느슨한 연대체입니다.

 

느슨한 연대체는 바짝 맞잡은 손으로 서로를 한 치의 틈도 없이 숨 막히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앙리 마티스의 그림처럼 잡은 듯 안 잡은 듯 손을 잡고 추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이승렬 선생님의 다른 글에 의하면 사회적 관계를 제거한 순수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 발 딛고 선 ‘(불순한) 개인그러면서 ‘(온전한) 개인들의 연합도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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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역사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자유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원리 원칙을 뛰어넘어야만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강연을 맺었습니다. 후쿠야마의 입을 빌린 선생의 주장은 이질적인 가치들의 공존을 재강조하십니다.

 

영화 도서와 개론서 몇 권을 통해 선입견이 있었던 지제크는 이승렬 선생님의 강연에서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정말 그 였을까,를 의심케하며 그의 책을 제대로읽어야겠다는 실현불가능한 결심을 다짐하게 했습니다.

 

진행자가 아니라 청강자의 모드로 열중해서 진지한 현장을 담은 모습 한 컷 없이 마쳤던 <두런두런 인문학> 세 번째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