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의 시대는 끝났다는 모토로 활동하는 댐백지화연대 소속 활동가들과 

일본 아라세댐 해체 현장엘 다녀왔습니다.

그 후기를 함께 나누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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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회고록과 실패한 4대강사업


때 이르게 나왔다는 MB의 회고록이 연일 가십거리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4대강사업에 대한 반성은커녕 금융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었다 운운하는 망발을 했다 하지요. 참 염치란 말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화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달 다녀온 일본 아라세댐 철거 현장 소식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이가 MB였습니다. 감사원 4대강 감사결과가 나와도, 정권이 바뀌어 총리실의 4대강 조사평과위원회의 결과가 나와도 반성은커녕 자화자찬 일색인 MB가 과연 아라세댐 철거 현장의 모습을 보고는 무슨 말을 할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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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 가을 대구 동성로에서 있었던 4대강 국민고발 인증샷놀이의 한 장면 ⓒ 정수근


그렇습니다. 이제 4대강사업은 누가 뭐라 해도 실패한 사업임이 판명 났습니다.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붓고도 강 생태계를 오히려 더 망쳐놓은 결과를 초래한 사업이 4대강사업이란 것은 이제 정부기관의 조사결과에서도 나온 '정설'입니다. 그 결과 강은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녹조는 더 심각해지고 있고, 고인물에서만 증식되는 큰빗이끼벌레라는 낯선 생명이 출연하고 기생충과 바이러스, 곰팡이류까지 들끓으며 물고기들은 죽어나고 있습니다


4대강 재자연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빨리 4대강 보를 허물고 강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강의 흐름을 되돌려야 놓아야 강이 살고, 인간이 살고, 이 땅이 되살아납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4대강 재자연화의 필연성을 느끼고 왔습니다. '이제 댐의 시대는 지났다'는 모토로 댐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댐백지화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4대강 보만한 아라세댐이 철거되면서 그곳을 흐르는 구마가와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똑똑히 목격하고 왔습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메시지를 읽고 왔다고나 할까요. 지금부터 아라세댐 철거의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보겠습니다.


아라세댐 철거 현장에서


역사의 현장까지 가는 길은 참 멀었습니다. 비행기로 기차로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기를 반복하고 난 후 일본 전통 료칸에서 일박을 한 다음날(1월 25일) 우리 일해은 비로소 아라세댐 철거 현장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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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가와강 물줄기 지도 사진. 세토이시댐과 아라세댐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정수근


일본 큐슈의 구마가와강(일본 3대 급류로 구마모토현 남부를 흐르는 길이 116㎞, 유역면적 약 1880㎢인 1급하천으로 야쓰시로 해(海)로 흘러들어가고 있음)로 가는 그날은 봄날처럼 포근한 날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보다 약간 더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봄이 벌써 찾아온 듯했습니다. 들판에 풀꽃이 벌써 싹을 띄웠고, 맑은 강물은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강물이 흘러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댐으로 막힌 강에서 댐이 허물어졌으니 시원한 물길이 만들어진 것이고, 강물 또한 얼마나 신이 날까요? 마치 강이 스스로 레프팅이라고 타는 것 같습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입니다. 2012년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아라세댐은 아직은 채 절반이 못될 정도도 철거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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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최초로 철거되고 있는 아라세댐. 댐의 오른쪽 절반이 해체됐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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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되고 있는 아라세댐. 역사의 현장이다. ⓒ 츠루 쇼오꼬


"2018년까지 공사를 한다. 은어의 산란에 영향을 주고 않고 공사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공사기간이 길어졌다. 50년대 당시 건설할 때는 1년 10개월 만에 만들었다. 높이 25미터, 폭 210미터의 댐이다. 초기에는 이 지역 필요 전력 수요의 16%를 감당했지만, 지금은 0.7%로 떨어져버렸다. 전력수요도 떨어지면서 철거 결정에 이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은 이 지역 주민이자 아라세댐 해체운동의 소속 환경운동가 츠루 쇼오꼬(65) 씨의 설명입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50년대 당시 은어 조업하는 어부만 2,00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는 은어가 많고 유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댐이 들어서고 난 이후 지금은 2-3명으로 급감했다고 합니다. 은어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은어는 산란을 위해서는 하류로 내려가야 하는데 댐으로 막힌 물길을 뚫고 내려갈 수 없으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츠루 쇼오꼬씨의 설명입니다만, 비단 은어만이 아닐 겁니다. 강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생태계가 댐에 의해서 단절돼버린 것입니다.


심각한 댐 퇴적토 문제


아라세댐 철거 현장을 뒤로 두고 새로 태어나고 있는 구마가와강 상류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댐의 심각한 비밀을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퇴적토 문제입니다. 댐이 담수를 시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퇴적토라고 합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엔 댐의 용량마저 잠식해 더 이상 물을 저장할 수 없게 됩니다. 아라세댐이 철거된 이유 중의 하나도 심각한 퇴적토 문제가 한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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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양의 퇴적토가 쌓여 있는 아라세댐 상류 구마가와강 바닥의 모습이다. 퇴적토를 긁어내고 있다 ⓒ 정수근


여기서 영주댐 문제의 해법도 하나 얻게 됩니다. 영주댐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모래와 토사 입니다. 댐을 만들어도 댐으로 계속해서 모래가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댐의 수명이 길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사조절댐이 영주댐 상류에 조성중에 있는 것이지요.


영주댐 상류의 내성천도 정말 상황이 심각합니다. 지금 담수 이후 이용하게 될 도로를 닦는 공정중인데 곳곳에서 사태가 일어나 흙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댐을 만들어도 그 수명이란 것이 뻔할 것이므로 아니 함만 못한 공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국보급 하천 내성천을 망치면서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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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토이시댐의 수문이 활짝 열려 있다. 은어들이 오르내리는 철이면 수문을 활짝 열어놓는다고 한다 ⓒ 정수근


그런데 아라세댐 상류에는 또다른 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세토이시댐인데요. 그 댐은 1958년에 준공했다 합니다. 그런데 2004년부터는 매년 12월 중순에서 다음해 2월 중순까지 수문 열어둔다 합니다. 퇴적물이 너무 많다는 중앙정부의 판단 때문이라고 합니다. 퇴적물 때문에 수문을 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댐은 이런 퇴적토 문제와 같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도 이번 방문을 통해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4대강 보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환경운동가 츠루 쇼오꼬 씨가 말하는 아라세댐 철거의 필연적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해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다. 둘째, 강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다. 셋째, 댐 때문에 갯벌에 공급되는 모래도 차단됐다. 갯벌에 흙과 모래를 공급해줘야 하다. 넷째, 은어는 산란을 위해 하류 기수역으로 내려가야 한다. 여름에 홍수 시 수문을 열 때만 은어가 내려 갈 수 있다. 어류가 내려가야 산란할 수 있다. 그동안 장어, 민물 게, 반딧불이 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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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을 물길을 되찾은 구마가와 강의 지류 시다라기가와강. 아라세댐이 담수했을 때는 참가자들이 서있는 곳까지 강물이 차 있었다 한다 

ⓒ 정수근


댐은 지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구마가와강 지류인 시다라기가와강은 아라세댐에서 2킬로 상류에 있는데, 댐을 담수했을 때는 이 지류까지 물이 차는 등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라세댐이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은 강물이 맑고 아름다운 자연하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흐르는 강이었습니다.


댐은 오히려 홍수피해를 키운다


구마가와강을 탐사하고 있는 우리 일행을 보고는 또다른 한 주민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이 지역의 아라세댐 해체운동 주민단체 대표를 역임했던 혼다 스쓰무 씨(80)입니다. 그는 지난 시절 기억의 토막을 토해놓았습니다.


"50년대 당시는 은어잡이 외에는 산업이 없었다. 어른과 아이들 모두 은어잡이 일을 했다. 그러다가 댐이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아라세댐 건설공사 일도 했다. 패전 후에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는 시내서 물건을 떼와서 장삿일을 했다.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역 주민들과 구마가와강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알게 해주는 증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댐이 들어서고 난 뒤 오히려 홍수피해란 말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1955년 댐 건설 10년 후 큰 홍수피해가 있었다. 그 전 홍수에서는 집들의 침수는 다소 있었지만 피해는 없었다(물길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댐을 짓고 나서는 오히려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부터 이 댐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전에는 비록 약간의 침수피해는 입었지만 은어를 잡아 생계를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댐 건설 이후엔 피해만 입게 됐다. 당시 국가에서는 댐이 생기면 '관광자원이 된다, 전기세 깎아준다, 홍수도 예방된다'고 하면서 주민들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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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세댐 준공 10년 후 발생한 홍수피해 현장 ⓒ 츠루 쇼오꼬


4대강사업을 강행한 한국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한 논리와 그대로 판박입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피해를 증명하라며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1965년 주민들이 수해를 당시 구마모토현에 항의하니, 그들은 자연재해라며 발뺌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68년 또 홍수피해를 크게 입게 되었고. 50가구가 집단적 행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아라세댐 철거운동의 시작이었다고 혼다 스쓰무 씨는 설명합니다. 그 후 변호사와 함께 소송도 시작했고, 어촌계에서도 함께 댐 철거운동의 제안이 있었고, 수리권 갱신을 요구하는 새로운 모임도 만들어 지게 되면서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물론 댐 유지하자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같은 지역민이라 대립은 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들은 조직적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지 댐을 다리로 이용하자는 이들이 댐 철거에 반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4대강 재자연화 꿈이 아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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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다 선생이 철거되어 흐르고 있는 구마가와 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 정수근


"구마가와강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고맙다. 그런데 공사를 좀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과거 구마가와강에는 콘크리트 제방이 없었다. 그게 이전과 가장 큰 차이다. 이곳은 은어의 가장 좋은 어장이었다. 모래톱도 아주 발달했었다. 그때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지난 40년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노 활동가는 담담히 소감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라세댐이 철거된다고 구마가와강이 바로 온전히 예전 모습을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류에 세토이시댐도 해체해야 하고 또 맨 하류에 요우하이보와 하구둑인 구마가와보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됐던 아라세댐이 허물어지면서 은어들이 다시 돌아오고 예전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재자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아라세댐이 허물어진 구마가와 강에서 대한민국의 4대강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댐이 사라지면 시나브로 자연이 되살아납니다. 물고기가 돌아오고, 사람이 돌아오고, 지천이 되살아납니다. 4대강 재자연화가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아라세댐 해체 현장에서 그것을 확신하고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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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댐의 시대는 끝났다. 댐백지화연대 소속 활동가들과 일본 현지 활동가들 ⓒ 정수근





글/사진 정리 - 정수근